‘시공을 초월한 여성 폭력’, 왜 지금도 문제일까?

A protest against violence against women in Melbourne.

A protest against violence against women in Melbourne. Source: A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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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거나 악질 범죄만 문제시 여기는 등 여전히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2015년 호주 연방 정부는 여성 폭력이 국가적 위기에 이르렀다고 선언했다.

1970 년대 이후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고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조치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대상 폭력 범죄 건수는 여전히 놀랄만한 수치를 보인다.

호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호주 여성 3분의 1이 육체적인 폭행을 경험했으며 전체 여성 중 5분의 1은 성폭력을 겪었다.

 2016 년에는 성인 여성의 약 5분의 1이 이전 12개월 동안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호주에서 매주 한 명의 여성이 가까운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하며 여성 노숙의 3분의 1은 가정 폭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정부 서비스와 생산성 저하로 인해 호주 경제는 매년 136 억 달러  가까운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제 호주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다루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거나 악질 범죄만 문제시 여기는 등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여기며 그동안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날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지 모른다.

'조용한' 전염병?

가정 폭력은 호주를 조용히 에워싸는 "조용한 전염병"이라고도 불린다.

가정 폭력을 겪는 개개인이 침묵하는 문화는 피해자가 너무 두렵거나 수치스러움때문에, 혹은 방관자들은 말을 꺼내기 너무 불편하거나 갈등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에는 여성 폭력이 보이지 않았으나 최근에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1970년대 호주에 페미니스트 역사학자가 등장하면서 역사가들은 여성의 일상에서 가족 간, 성적 및 다른 형태의 폭력에 대한 경험을 비롯해 다양한 연구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케이 숀더스는 1984년 퀸슬랜드 식민 시절 가정 폭력에 관한 글을 발표하면서 여성 폭력에 관한 ‘엄청난 양의 자료’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다른 주제의 법원 기록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찾게 된19세기 빈번했던 가정 폭력 관련 법원 기록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신문사들은 일제히 이 사건들을 기사화했으며 ‘가정 폭력’이라는 용어가 없던 당시에는 ‘아내 구타’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A cartoon published in the Recorder newspaper depicting the pervasiveness of wife-beating in Australia in the 1930s.
A cartoon published in the Recorder newspaper depicting the pervasiveness of wife-beating in Australia in the 1930s. Source: National Library of Australia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남성이 체벌을 포함해 여성을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믿음에 반해 정당화될 수 없는 ‘아내 구타’는 범사회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해져 갔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사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만큼 적극적인 대응은 이어지지 않았다.

폭력 문화

역사적으로 폭력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는 법안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폭력을 줄이려는 노력 또한 지속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호주 사회는 남성들에게 신체적 및 정신적으로 강인할 것을 요구했고, 19세기와 20세기 여성들에게는 얌전한 여성상이 요구됐다.

19세기 호주 남성의 수는 호주 내 유럽 출신 여성의 수보다 월등히 많았고 식민우월주의 문화 속에서 강한 남성상을 만들어 냈다.

또 다른 주요 원인으로는 초기 호주 사회에 퍼져 있던 남성과 여성 간의 경제적 불평등이다. 자신과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폭행 혐의로 기소되더라도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해 남편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는 여성들이 종종 있었다.

역사학자 주디스 알렌은 호주 여성들이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탈피할 수 있는 두 가지 주요 문화적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A newspaper illustration from 1877 depicting the body of an Eaglehawk woman. Her husband was charged with her murder.
A newspaper illustration from 1877 depicting the body of an Eaglehawk woman. Her husband was charged with her murder. Source: Victorian State Library
첫째, 1880년과 1920년 사이에 출산율 감소를 들 수 있는데, 이는 가정 파탄 이후 여성의 부양 가족 수 감소를 의미한다.

두번째는 2차 대전 후 여성들의 유급 고용 기회가 증가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경제적인 학대와 같은 비물리적인 형태의 폭력 또한 왜 여성들이 폭력적인 관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지 인식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남성이 아내의 경제적 지위를 크게 통제하고 있는 사회 구조 내에서는 가정 폭력 문화가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혁 및 저항

여성 권리 개혁가들과 페미니스트들은 19세기 후반부터 호주 내 여성 폭력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해 힘써 왔다. 성관계 합의 연령 기준을 올리는 것부터 부부간 강간죄 성립 등 그 내용은 광범위하다.

여성행동가들은 언론을 통해 성폭력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하는 방식으로 활동해 오고 있으며 단지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며 행동이 필요할 때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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