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분기점, 마보판례와 원주민 토착소유권

The On Country program will see Indigenous Elders and Traditional owners combat reoffending and crime with culture.

The On Country program will see Indigenous Elders and Traditional owners combat reoffending and crime with culture. Source: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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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들의 현 주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주민 권리 회복 운동의 ‘전설’ 에디 마보(1992년 작고)의 삶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인 원주민토소유권(Native Title)의 법적 근간이 된 마보 판례의 배경을 살펴본다.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서 불붙은 세계적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호주 국민들도 적극 동참했다.

흑인차별규탄의 슬로건이 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에 대한 연대감 표명과 함께 호주 국민들은 지금 호주 원주민 차별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 6월 3일은 호주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역사상 최고의 법정 판례로 평가 받는 ‘마보 판례’가  탄생된 지 28년째 되는 날과 겹치기도 했다.  

원주민 지도자 에디 마보 씨의 시대를 앞서가는 노력으로 탄생된 마보 판례.

마보 판례를 통해 ‘원주민 토착 소유권(Native Title)’이라는 세계사적 법안이 호주에서 탄생되는 근거가  마련된지 28년의 세월이 흘렀다.

호주 원주민 운동의 전설 ‘에디 마보’

호주 원주민들의 현 주소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한다면 원주민 권리 회복 운동의 ‘전설’ 에디 마보(1992년 작고)의 삶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누가 뭐래도 원주민 사회의 경계를 뛰어넘어 호주 현대사를 다시 쓰게한   ‘영웅’이다.

호주 퀸즐랜드 주에 소재한 제임스 쿡 대학(James Cook University)의 정원사로 일했던 호주 원주민 에디 마보는 “4만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호주 원주민들의 전통과 실체적 존재에 대한 법적지위를 인정받게 한 주인공”으로 평가된다.

정원사로 일하면서 그는 수시로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뒤졌다. 동시에 그는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는 명제의 중요성을 실천하기 위해 법학 및 인류학 강의를 청강하기까지 했다. 다름아닌 원주민들의 토지 소유권리를을 인정받기 위해 복잡하고 난해한 영국과 호주의 관습법 판례집을 송두리째 뒤지고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Eddie Mabo - the man who changed Australia
Eddie Mabo - the man who changed Australia Source: SBS
[호주 현대사의 분기점을 마련한 원주민 지도자 에디 마보의 생전 모습.  SBS]

퀸즐랜드 북부 토레스 군도 해협(호주 원주민의 대표적 집단 거주지역)의 메리암 부족의 지도자 출신인 에디 마보는 1982년부터 토레스 군도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기 위한 법정 투쟁을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그는 호주 역사상 최고의 법정 판례인 ‘마보 케이스’를 탄생시켰고, ‘원주민 토착 소유권(Native Title)’이라는 법안이 탄생되는 근거를  마련했다.  

일평생 원주민들의 토지 소유권 인정을 위해 홀홀단신 정부와 호주의 백인역사를 상대로 싸웠던 그는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원주민 토착 소유권(Native Title)을 인정받는 역사적인 ‘마보 판례’가 내려지기 5개월 전인 1992년 1월 세상을 떴다.
Eddie Mabo - Mabo Case
Eddie Mabo with his legal team. Source: SBS
[역사적인 마보 판례를 이끌어낸 에디 마보와 그를 도운 법률팀}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를 무너뜨린 마보 판례

230년 전 호주 대륙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의 원칙을 선포했다.

 즉, “소유주가 없는 무주공산의 대륙을 발견했다”는 원칙을 정하고 여기에 맞는 법적 당위성을 만들었던 것.

이처럼 “호주 대륙이 유럽의 백인들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에 의해서도 점유된 적이 없다”는 유명한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원칙을 선포했고, 영국 최고의 법조인들에 의해 ‘법의 원칙’으로 적용되어 왔다.

테라 눌리우스 원칙은 이미 전 세계 영국 식민지에 걸친 식민 통치의 기본 원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법의 원칙은 제임스 쿡 대학의 정원사로 도서관을 드나들며 연구에 몰입했던 퀸즐랜드 북부 토레스 군도 해협 원주민 부락 출신의 에디 마보라는 원주민에 의해 무너졌다. 

1992년 연방 대법원에서 역사적 사건인 ‘마보 판례’는 탄생했다.

1992년 연방 대법원 판결

원주민들의 전통적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그의 과감한 도전에 연방 대법원은 마침내  ‘원주민에 의해 이룩된 3만년의 전통’ 자체를 부인했던 ‘테라 눌리우스’ 원칙을 뒤짚는 역사적인 판례를 남겼던 것. 

 이로써 사실상 영국 식민지 역사 최초로 원주민의 존재여부를 인정한 전환점이 됐다.

 실제로 원주민들이 호주 인구조사에 정식으로 포함된 것이 불과 1967년에 실시된 국민투표 이후이며, 그때부터 원주민들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Thousands of Indigenous people will benefit from the decision.
Thousands of Indigenous people will benefit from the decision. Source: Getty
[원주민 기]

말 그대로 원주민들이 호주 대륙에서 인간다운 인간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967년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마보 판례’는 획기적 전환점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호주 원주민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역사적 문화적 제휴를 맺어온 지역에 한해서 그들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다.

대법원은 또 “원주민들의 오랜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제휴가 분명하고 현재까지 누구에 의해서도 매입 매각된 적이 없는 지역에 한해 이번 (마보) 판례가 적용될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그러나 당시 판결에서는 “이미 200여 년 동안 백인의 점유기간에 걸쳐 법적 지명이 인정된 곳은 제외된다”고 규정함으로써 사실상의 토지 공유지나 국유지(Crown Land)에 한해 원주민들의 토지 소유권이 인정된 것으로 풀이된다.  

1993년 폴 키팅, 원주민 토착 소유권 법안 도입

이 판결에 대해 폴 키팅 당시 연방총리는 “200년 동안 원주민에 대해 자행된 약탈과 남용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한 판례”라고 평가하며, 마보 판례에 근거한 원주민 토착 소유권 법안(Native Title Act)의 도입(1993년)을 주도한 바 있다.
Then-treasurer Paul Keating.
پاول کیتینگ مدعی بود که باب هاوک کرسی نخست‌وزیری را به او وعده داده بود. Source: AAP
[연방총리 재임 시절의 폴 키팅.  그는 원주민토착소유권 법안을 이끌었고, 호주의 탈 유럽 친 아시아 정책을 선포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원주민 토착 소유권 법안은 호주의 주요 광산기업체의 개발 계획에 맞선 원주민 및 환경단체의 끝없는 법적 공방의 시작이었다.  지극히 난해한 법리에 따른 일반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원주민 토착 소유권 법안은 호주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The life expectancy gap between Indigenous and non-Indigenous Australians is still unacceptably high.
The life expectancy gap between Indigenous and non-Indigenous Australians is a difference of ten years, despite the governments Closing the Gap strategy. Source: Supplied
[정부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주의 비원주민과 원주민간의 평균수명 및 학력 등 흑백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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